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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변호사의 서랍

늦어서 고마워

2017년 08월 10일


오늘도 늦잠을 잤다. 이상한 것도 아닌게 하룻밤에도 3–4번씩 깬다. 더워서. 깰 때마다 에어콘 온도를 1도씩 낮추고 자면 아침에 보면 18–9도였던 적도 여러번 있었다. 그래도 요즘은 밤에 조금이나마 덜 더워져서 다행이다. 그래도 아침에 보면 24–5도 정도 수준이다.

“이번 여름은 지난번 여름보다 더 더워.”

문득 생각해 보니, 이 말을 지난 10년동안은 매년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니까… 아무래도 나 한 사람만의 경험 가지고 지구온난화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 우스꽝스러울 수는 없을 것이니까…

요즘 뭔가 새로운 것이 나오면 지친다. 늙어서 그런가 했다. 원래 늙으면 새로운 것이 싫어지는 법이니까… 아무래도 나 한 사람만의 경험 가지고 발전의 속도가 어쩌고 하는 것보다 우스꽝스러울 수는 없을 테니까…

늙는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래도 나름 얼리어답터였는데… 요즘은 언젠가 훓어 봐야지라고 처박아둔 주제가 수십 개는 넘어서는 것 같다. 나름 아주 급한 것도 많은 것 같은데… 정말 정신이 없다. 뉴스를 읽다 보면 좌절한다.

토마스 프리드만 책을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나름 몇 권은 읽은 것 같다. 사실 토마스 프리드만의 이야기는 믿음이 잘 안간다. 뭔가 아주 재미있고, 통찰력이 있고 마치 소설처럼 넘어가지만, 책을 덮고 나면 허무하다. 그래도 그가 책을 내면 나름대로는 읽어 보려고 하는 것은 그의 해법, 그의 통찰, 그의 비전에 딱히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게 뭐였더라?) 그의 문제의식, 그의 고민, 문제를 접하는 그의 접근법과 태도에는 공감하기 때문이다.

Acceleration 옆의 그림은 에릭 “아스트로” 텔러 (홈페이지 소개)라는 구글 X R&D 랩장이자 외활아버지는 수소폭탄을 설계한 에드워드 텔러이고 외할머니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제러드 드브루라고 하는 짱나는 사람이 그린 것이다. 그냥 아이패드에서 그려 보고 싶었다. 이게 뜻하는 바는 이제 사람의 적응력이 기술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제 늙어서 얼리어답터 덕질을 못하는게 아니라 이미 덕질로 따라잡기에는 너무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이다. 이걸 나에게 설득하려면 적어도 텔러 정도급의 수장이 나서줘야 하는 것이다.

결론은 – 제목 이야기를 하자면 – 한 템포 쉬고,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하라는 혜민수준의 덕담을 반복한다는 느낌이 든다. 온갖 어려운 이야기 다 하고 나서는 결론은 … 이래서 내가 토마스 프리드만의 말에 별로 믿음이 안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문제의식과 성실함은 정말 존중할 만하다. 같은 결론을 내기 위해 무지 먼 길을 돌아 오는 것 같다.

사실 결론은 아직 모른다. 에릭 텔러가 위의 그림에서 말하는 바는 선수들의 속도와 덕질로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 내지는 평민이 따라잡는 속도 사이의 간극에 있는 삼각형을 메꿔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첫째는 좀 더 가열찬 덕질, 둘째는 좀 더 똑독한 정부라는 것이다. 여기서 정부가 무슨 상관이냐고? 그대로 인용해 보자면,

텔러의 주장은 인류의 적응력 강화는 90 퍼센트가 “학습 최적화” – 즉 기술 혁신을 우리 문화와 사회구조에 적응하는 문제라는 것이다. 특허청이건 (특허청은 최근 몇 년간 크게 발전하였다) 아니면 기타 정부 규제기관이건 모든 기관은 더 애자일해 져야 한다. 즉 빨리 실험하고 실수로부터 배울 의지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규제가 수십년씩 유지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이런 규제가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을 재평가해야 한다. 대학은 이제 커리큘럼을 더 빨리, 더 자주 회전시킴으로써 변화의 속도에 맞추어 변화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즉, 특정 강좌에는 “유통기한”을 붙이는 것이다. 정부규제도 비슷한 접근법을 취해야 한다. 정부는 혁신가들만큼이나 혁신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도 무어의 법칙의 속도에 맞추어 운용되어야 한다.

뜬금 없는 특허청 문제는 뭐냐하면 가속화의 결과 새로 나오는 기술이 의미있는 시간이 기껏해야 3–4년이고 그보다 빨리 후속 기술에 따라잡힐 가능성이 많은데 20년 특허보장은 무슨 뜬금 없는 이야기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토마스 프리드만을 잘 안 믿는 이유는 지나치게 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발 하라리나 제레드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이다. 머리 RPM 높이는 소리가 멀리 변방의 한국땅에까지 들린다. 나는 차라리 아주 작은 이야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건 간단한 논리인데, KISS 원리 – 즉 간단한 것이 더 좋다는 말의 의 연장이다. 간단한 말은 검증이 쉽다. 그리고 틀릴 가능성이 (있는 곳이) 적다. 큰 이야기는 검증도 어렵고 틀렸을 가능성이 있는 곳도 아주 많다. 그러므로 큰 이야기는 99% 틀렸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도대체 틀린 것이 무엇이고 맞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물어 봐야 하지만, 이 쯤에서 넘어가자.

얼리어답터로서 변화하는 기술에 적응하는 문제와 사회가 기술발전에 적응하는 문제 (사실 이 문제는 진심으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분명히 다른 문제이다. 아직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고, 겨우 10% 정도 읽었지만, 첫인상은 학습최적화 정부의 빨리 실험하고 빨리 실패하는 애자일 접근법은 아주 과격하게 반민주적일 가능성이 아주 높다. 도대체 정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IQ 높은 텔러는 정부와 규제(법과 관습)를 동일시하고 있다. 과연 옳은가? 좀 더 읽어 보자.

사실상 요즘 들어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 사회의 고민이 많다. 좀 더 많아야 한다. 정부에서 하는 이야기는 내가 – 위에서 말한 이유로 가장 싫어하는 – 거대담론 제4차산업혁명이다. 도대체 정부가 뭘 해야 하는지 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천재(의 후손이므로 천재일 것이 분명한) 사람 이야기도 좀 들어 보자.

그나저나 한국 책값 무지하게 비싸다. 내가 조금 흥미를 가지고 혹시 사 볼까 했던 책 3권이 모조리 35,000원에서 40,000원이다. 아마존에서는 모조리 12–17달러 수준이다. 관심 없겠지만, 적어 두자면,

이게 다 도서정가제 때문이다. 빨리 실패하라. 좀 애자일해 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