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fully.kr
한 미국 변호사의 서랍

머리도 종이도 없는 업무환경 두번째: LaTeX과 pandoc

2017년 08월 10일


자, 그러면 나에게는 아이패드가 있고, 코다라는 애플리케이션이 있고, 또 클라우드가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할까?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업무 환경은 이것이다. 나는 모든 변호사는 – 또 모든 변호사와 일하는 컨설턴트, 회계사, 회사 직원 등등은 – 그러니까 공대출신이 아닌 모든 전문가는 다음과 같은 환경에서 일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 문서작업은 LaTeX으로
  • 공유 및 공동작업은 github으로
  • 연락은 slack으로
  • 컴퓨터는 리눅스
  • (더하기 아이패드)

어느 정도로 굳게 믿느냐면, 위에서처럼 일하는 변호사만 모인 로펌이 있다면, 심각하게 이직을 고려할 것이다. 진짜로 옮길 가능성도 아주 높다.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저항은 첫번째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큰 저항은 두번째일 것이고, 마지막이 협업도구일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변화를 불러 오려면 저항이 가장 적은 세번째에 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블로그를 통해서 나는 변화를 불러 오려는게 아니고, 내 하고싶은 대로 하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전세계 변호사들 가운데 특히 문서작업을 LaTeX으로 해야한다는 말에 동의하는 사람은 약 100명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사회는, 이상적인 업무환경은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가능할 때마다 그렇게 한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면 (LaTeX으로 법률문서를 써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전세계에서 약 100명이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BibTeX Style Examples에 가 보면 법과 관련된 것이 하나도 없다. CTAN에서 biblatex을 검색해 봐도 미국식 법률 스타일은 없다. 참고로 독일과 스위스는 있다. 따라서, 위 100명 가운데 90명은 독일과 스위스에 산다고 나는 확신한다.

왜 LaTeX을 써야 할까? 완벽하니까.

두번째 대답은 아름다우니까. 나는 사실 미적감각이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LaTeX에 의존한다. The Beauty of LaTeX이라는 글을 보라. 이 글의 내용은 시간이 나면 조금씩 소개하겠지만, 단적으로 말해 나는 마이크로소프트워드나 비슷한 프로그램의 “양쪽 맞춤”에 만족했던 경우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단 한 번도!

참고로, 완벽하다는 것은 나는 10년 전에도 LaTeX을 썼고, 지금도 LaTeX을 쓰는데, 앞으로 30년 뒤에도 이 프로그램을 쓸 것 같다는 뜻이다.

그리고 참고로, 미적감각도 없고 막눈이라면서 왜 그렇게 겉보기에 집착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내 대답은 이렇다. 변호사는 글로 먹고 살거나, 아니면 말로 먹고 산다. 아니, 어떤 변호사는 말로 먹고 살거나, 아니면 글로 먹고 산다. 그러니까, 변호사는 두 부류가 있다는 말씀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 둘의 비중이 다른 정도에 따라 어떤 부류의 변호사인지 알 수 있다. 나이가 들 수록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로 바뀔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이게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뭐랄까, 마치 프로그래머들이 관리직으로 “승진”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듯이… 말로 먹고 사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양치질을 잘 해야 한다. 그리고, 옷을 잘 입어야 한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좋은 소프트웨어를 써야 한다. 그리고, 나쁜 소프트웨어를 쓸 수 밖에 없는 처지라면 (회사 정책 등의 이유로) 폰트에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세번째 이유는 – 아마도 마지막 이유는 – 철학적인 이유이다. 철학적으로 나는 글의 형식과 내용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단지 마이크로소프트 워드에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WYSWYG 소프트웨어에 반대한다. 너무 과격해 보인다면, 굳이 당신이 쓰는 것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내 손까지 더럽히고 싶지는 않다.

좀 불결해 보인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은 자고로 글을 더럽히면 안되는 것이다.

좀 강박적이고 결벽증같아 보인다고 할 까봐 (사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은 자기 글에 대해서 좀 강박적이고 결벽증이 있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덧붙이자면 네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협업 도구는 git 인데, 이걸 사용하려면 무조건 텍스트 문서를 사용해야 한다. 게다가 유닉스의 기본 철학이 모든 것은 텍스트 파일로 저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프리젠테이션을 위해서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누구나 접근할 수 있지만 깔끔하고 무료인 프로그램, 예를 들어 pdf 같은 것을 사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진짜 마지막이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이하여 바야흐로 변호사들도 인공지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아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인공지능이고 딥러닝이고 일단 데이터가 많아야 한다.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로 작성한 문서는 데이터가 아니다. 적어도 이런 의미에서… 이런 이유에서 나는 모든 변호사는 LaTeX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니, 적어도 글로 먹고 사는 변호사라면 … (말로 먹고 사는 변호사는 자고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치약을 써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이다.)

그렇다고 나는 강박적이고 결벽증은 아니다. 그래서 나는 타협할 용의가 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위해서 – 백보 양보해서 – 나는 pandoc 정도로 물러설 용의가 있는 사람이다.

pandoc을 이용하는 이유는 세 가지 정도이다. 첫째, LaTeX보다 쉽다. 물론 LaTeX도 아주 쉽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포맷에 대한 것은 거의 한 번만 자기 마음에 들도록 설정하고 나면 다시는 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것도 거의 대부분은 패키지를 사용한다. 그 다음부터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글자와 문단을 꾸미는 수준 정도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markdown보다 딱히 어렵지도 않다. 오히려 pandoc에는 너무 제약이 많다. 예를 들어, pandoc에서 comment를 달려고 해 보라.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마 밤새 구글링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 살면서 진짜 중요한 것은 쉬운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쉽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 여러가지 문서로 변환이 가능하다. 내가 아무리 불결하게 느낀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모든 변호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워드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왕이면 이 과정을 자동화하면 더 좋지 않겠는가? 이왕 벌레를 잡아야 한다면, 고무장갑이나 아니면 진공청소기를 이용하는게 더 좋아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숨은 이득은 여러가지 포맷에서 여러가지 포맷으로 변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글로 먹고 사는 변호사는 혹시 모르니까 당장 상관 없는 뉴스라도 꾸준히 보고 있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주로 포켓에 저장해 두지만, 뭔가 메모도 하고 링크도 정리하고 할 때에는 개인 용도로 jekyll 프로그램을 로컬에 깔아 두곤 한다. 어차피 마크다운으로 정리하면 되니까… 그리고,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포맷인 epub으로 바꾸는 것도 아주 좋다.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이냐고?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서 내가 일하는 방법을 조금씩 정리해 두고자 한다. 언젠가는 나처럼 하는 정신나간 변호사가 또 생길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