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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변호사의 서랍

북유럽 신화

2017년 02월 23일


소설가로 제법 이름깨나 날린 사람치고 한국에서는 삼국지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나는 삼국지 쓰는 소설가 책을 읽지 않는다. 그 전에 읽었다고 하더라도… “아, 저 사람 이제 본전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글빨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설가가 삼국지에 손을 대는 순간 그는 이제 재기나 영감이나 통찰이나 혜안은 사라지고, 이제는 기본기인 글빨만 남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삼국지를 좋아한다. 가끔 한번씩은 읽어 줘야 한다. 그래서, 그렇게 긴 보통 10권짜리 책을 사서 읽지만, 읽으면서 실망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이문열도 그랬고, 황석영도 그랬다.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삼국지가 아니다. 오늘 닐 가이만북유럽 신화를 읽었다. 느낌이 딱 삼국지를 읽는 느낌이었다. 다행히 책을 짧다. 이틀 정도 읽을 분량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상도 많이 받은 American Gods (한글 번역, 신들의 전쟁)도 좀 그랬었다. 닐 가이만은 내 체질이 아닌가보다. 글은 참 잘 쓴다. 그런데, 글빨 외에는 없다. 그래도 American Gods를 읽으면서 느낀 것은 재기나 영감이나 통찰이나 혜안을 얻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어쩌면 모든 대중문학 작가들의 열망이겠지만, 어쩌면 글빨 때문에 실패가 더 두드러져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북유럽 신화에서는 이제 그마저도 포기한 느낌이다. 그냥 받아쓰기이다. 그래도 엄청나게 수려한 글빨이다. 그래도 받아쓰기이다.

한 2년 년 전에 한동안 북유럽 신화에 좀 푹 빠져 지냈기 때문에 실망감이 좀 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