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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국 변호사의 서랍

너희가 원하는 개헌은 법치주의의 폐기이다

2016년 12월 2일


요즘 양아치들 사이에서 성경말씀 인용하는게 유행이던데, 나도 한 번 양아치 인증: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라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요한계시록 6장 9-11절)

주말 광화문 거리를 싸돌아 다니면서 문득 30년 전이 생각났다. 나의 대학생활은 아주 불행하였다. 불의도 알겠고, 정의가 무엇인지도 알겠고, 역사도 알겠고 다 알겠는데, 나는 그냥 공부나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마치 세계대전의 포화 속에서 논리학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믿으면서 연구에 몰두하였던 프레게처럼.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거리로 내몰렸고, 해야 할 몫을 해야 했다. 강의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내가 원하는 것 보다는 역사의 당위가 더 중요하다고 믿으면서. 두번 다시 돌아보고 싶지 않은 시절이었다. 어느날 나와 친한 선배가 한 손에 성경책을 들고 있었다. 매캐한 최루탄 연기 속에서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읽고 있느냐고. 그가 읽어 준 성경구절이 바로 위의 구절이었다. 너무 짜증났다. 눈물을 흘리며 거리로 나섰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간단하다. 죄지은 사람이 죄값을 받는 것이다. 지금 여당이 스텝이 꼬이는 것은 이 단순한 진리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지는 인정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 대통령이라도 죄를 지었으면 감옥에 가야지.

여당: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게, 개헌을 해야…

국민: 그럼 지금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을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인가? 한국은 법치주의가 아닌가?

여당: 그건 아니지만, 지금 헌법 하에서는 대통령이 감옥 가면 바로 선거를 해야 하는데…

국민: 그건 내 알바 아니고!

도대체 지금 차기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개헌이건 대선이건 이게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려면, 일단 한국이 법치주의임을 보여줘야 한다. 그걸 위해서는 일단 대통령을 처벌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딱 여기까지이다. 나머지는 일단 그 다음에 이야기하자고.

역사가 반복된다고? 지금 반복되는 역사는 적게 잡아도 2,000년 전에 반복되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법치주의는 이미 2,000년전 한나라가 진시황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았을 때, 유교가 법가를 이기고 국가의 통치이념으로 자리잡았을 때 끝장났다. 유교에서 법가를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는 바로 법 앞의 평등이었다.

중국제국에는 모든 국민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개념이 없었다. 반대로, 법에 따라 어떻게 취급되는지는 그 사람의 사회 내에서의 지위에 달려 있었다.1

유교의 논리는 반법치주의, 법앞에서의 평등에 대한 반대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자식을 죽인 아비가 아비를 죽인 자식과 똑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농민을 죽인 왕이 왕을 죽인 농민과 똑같은 처벌을 받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유교의 논리이다. “예기”에는 이렇게 나온다(고 한다).

예는 서민들에게까지 적용되지 않고, 형은 귀족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법에 따라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것이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다. 이런 것까지 요구해야 하는 것이 참 서글프다. 오늘 이코노미스트에서도 지금 문제의 뿌리에는 “한국의 엘리트들은 무슨 짓을 해도 넘어가는 반면, 평민들은 제도가 자기에게 불리하게끔 짜여져 있다고”2 느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있다고 지적하였다.

도대체 왜 지금 개헌을 이야기하고, 대선 일정을 이야기하는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현재의 헌법 하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할 수 없을 때 뿐이다. 정치인들이 하는 짓은 그 반대인 것 같다. 죄지은 사람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개헌의 목표인 것 같다. 내지는, (상상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좋게 생각하면) 개헌을 하여 정권을 잡을 수만 있다면, 그 혼란의 와중에서 죄를 지은 사람이 빠져나가는 것은 할 수 없다는 뜻인 것 같다. 그따위 것은 문제도 안되니까. 대한민국판 신성동맹이다.

그러니 서로 말이 안통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국민이 지키려 하는 가치는 바로 법치주의 이다. 개헌이니 대선 따위는 우리는 관심도 없다.

지금 개헌을 이야기하는 것은 지금까지의 법치주의는 농담이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앞으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농담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천하에 천명하는 것이다. 만약 정치인들이 조금이라도 진지하다면 지금은 일단 죄인이 죄값을 받게 하고, 개헌이건 대선이건 그 다음에 이야기하는 것이 순서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건 그저 권력욕의 표현일 뿐이다.

개헌이건 대선이건 권력욕이건 무엇이건간에, 죄를 지은 사람이 벌을 받지 않도록 하면, 그 결과는 한국 법치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공범이다. 범죄자가 도피하도록 도와준 공범이다. 일단 법치주의를 세우고, 그 다음에 다음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다.

나름 법전 좀 들쳐 본 사람으로서 대통령에게도 감히 조언 한 마디 하자면, 여기서 벌을 피하는 방법이 하나 있다. 바로 insanity defense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나는 미쳐서 이런 짓을 저질렀으므로,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가? 지금껏 나온 증거에 비춰 보면?

책을 읽다가 중간에 끊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서, 앞의 요한계시록에 나온 하얀옷 입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할 사람을 위하여 다시 양아치스럽게 성경말씀 조금 더 읽어 보자면: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요한계시록 6장 15-17절)

  1. 원문은 “Imperial China did not have a concept of treating all subjects equally before the law. To the contrary, how one was treated under the law depended upon one’s status within society.” Daniel Chow, The Legal System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a Nutshell. ↩︎

  2. 원문은 “… the elites of South Korea can get away with anything, whereas ordinary people feel the system is stacked against them.” (Why Park Geun-hye should resig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