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도우 업그레이드와 돈오점수

2016년 3월 24일

벨기에에서는 테러가 나고, 앤디 그로브가 사망하고, 애플이 신제품 발표를 하는 이틀 동안 나는 윈도우 10을 깔고 있었다. 이 좌절을 다시 겪게 되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웠다.

나는 윈도우 사용자가 아니다. 맥을 사무실에서도 주력으로 사용한지 10년도 더 지났다. 사실 각오했던 일이었다. 이런 일을 너무 싫어해서 와이프와 아들 컴퓨터를 모조리 맥으로 바꾸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 벌로 아내의 컴퓨터는 안티바이러스에서도 잡지 못하는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띄우면, 창이 수십개씩 뜨는 모종의 “병”에 걸렸다. 그래서 나는 지금 데이터를 모조리 백업하고, 깨끗이 포맷한 다음, 윈도우 7을 다시 설치하고, 기본 프로그램을 다 다운로드받아 설치하고, 그 다음에는 윈도우 10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벌을 받고 있다. 자그마치 이틀이 걸렸다.

이렇게까지 걸릴 줄은 몰랐지만, 어느 정도는 예상 - 각오하고 있었던 일인지라, 자리에 앉기 전에 전호근의 한국철학사를 펼쳐 들고 시작했다. 이왕 벌을 받을 바에는 확실하게 받자는 뜻도 있었다. 정확하게 200페이지를 읽었을 때, 그러니까 삼국시대를 지나 고려불교를 다 섭렵하고, 고려의 유학자들에 대해서 읽을 때가 되니 벌이 끝났다. 이제는 백업, 그러니까 나중에 다시 복원하기 위한 지점을 백업하기만 하면 끝이다.

윈도우 10을 다운로드한 다음 악명 높은 업데이트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단계가 올 무렵, 나는 지눌의 “돈오점수 (頓悟漸修)”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크게 위로가 되었다. “그럼, 별 것 아닌 윈도우 하나 까는 것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세계를 구하는게 한 방에 되면 좀 불공평하잖아?”

고등학교때인가? 역사인지 윤리인지 시간에 돈오점수와 돈오돈수 (頓悟頓修)의 관계에 대해서 뭔가 배운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사실 나는 한국철학에 대해서는 완전 문외한이다. 대충 어디선가 들은 것 같긴 한데 이이와 이황이 어떻게 다른지도 모른다. 그저 윈도우를 업그레이드하는 과정이 좀 더 흥미롭기를 바랬을 뿐이다. 내가 쓰지도 않을 OS를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흥미로와봤자이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게 비슷한 시기에 나온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돈오점수는 고려시대의 지눌이 한 이야기이고, 돈오돈수는 800년 뒤의 현대의 성철이 한 이야기라고 한다. 조금 흥미로와지기 시작했다. 윈도우는 여전히 업데이트를 확인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돈오점수라는 것은 일종의 수사학적 변명이다. “한 번에 깨닫는다면, 그 다음에는 왜 수행을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서 한 방에 깨닫고, 수행은 천천히라고밖에는 대답할 거리가 없는 것 아닌가. 돈오돈수는 좋게 말하면 두 자로 할 수 있는 말을 네 자로 하는 글자의 낭비이고 (영어로는 redundant하다고 한다), 나쁘게 말하면 형용모순이다. 어떻게 순식간에 수행을 끝내? 1초만에 윈도우를 업그레이드해도 그것도 윈도우를 업그레이드한 것인가? 지눌은 한국 선불교의 개조쯤 되는 인물이라고 한다. 불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지만, 나는 선종은 언어에 대한 불신 이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현실을 정확히 표현하지 못한다. 언어와 현실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실존이고 체계인 것이다. 선문답은 언어체계의 버그를 폭로하는 행위이다 (아니, 거꾸로 현실의 버그를 폭로하는 행위인가?).

신광이 달마를 찾아가서 가르침을 청한다. 달마가 본 척도 하지 않자, 신광은 오른팔을 잘라버렸다. 그러자, 달마가 가르침을 주겠다고 한다.

신광이 마음의 번뇌를 물리칠 수가 없다고 하자, 달마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해요. 그런데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죠. (전호근, 한국철학자, 149쪽)

깨달음은 이렇게 오는 것이다. 여기에 선종의 딜레마가 있다. 언어와 현실의 불일치, 갈등, 모순을 어떻게 가르치고 전수할 것인가? 분명 언어를 통해서는 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전략적으로 언어와 행동을 대조하고, “보여주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선종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선문답을 통해서 전수되는 것이 아니다. 선문답을 통해서 전수되지 않고, 선문답을 포함한 선문답을 하는 스승과 제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밖에 전수할 수 없는 것이다. 벽암록이나 무문관을 보면 모두가 이런 구조이다. 선문답 자체에 빠지면 답이 안나온다. 누가 누구와 어떤 상황에서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언어와 현실의 충돌을 볼 수가 없다. 아직도 업그레이드 프로그램은 업데이트를 확인하�� 있다. 결국은 중단하고 USB를 만들어서 설치하려고 USB 만들기에 돌입하였다.

지눌은 수십 년씩 수행을 한다. 그리고, 가끔씩 나와서 후학도 길러야 한다. 이 수행이라는게 따지고 보면 달마대사를 따라서 몇 년이고 벽보고 앉아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쳐야만 하는 과제에 집중했다고 쳐 보자.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 수십 년 동안 벽만 보고 앉아 있었는데, 도대체 할 말이 뭐가 있을까? 와이프는 말한다. “아직도 업그레이드중이야? 앞으로 몇 년 걸려?” 할 말이 없다.

진실성이 있는 이야기는 자기 이야기이다. 그러니, 한 게 없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그저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 모니터 째려본 것 말고는 한 게 없다는 것은 하늘도 땅도 와이프도 다 안다. 결국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배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할 “내 이야기”라는게 결국은 내가 어떻게 깨달았는가에 대한 이야기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서 과거에 내가 어떻게 깨달았는지 이야기해 준다. 그냥 벽 보고 앉아 있었던 이야기이거나, 아니면 책 읽었던 이야기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 잘 듣고 그냥 자기 갈 길로 가면 얼마냐 좋겠느냐마나는, 제자들은 이야기가 좋다느니, 감명이 깊었다느니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눌러 앉아 있는다. 때가 지나면 또 이야기를 해야 한다. 다른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그저 또 깨달았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좀 똑똑한 제자는 “지난번에도 깨달았다면서, 뭘 그렇게 자꾸만 깨닫는다는거지? 이거, 왠지 사기당하는 기분인걸? 깨달으면 부처가 되는 것 아냐? 근데, 뭘 그렇게 자꾸만 깨달아? 부처도 깨달아? “ “아니, 그게 아니고, 지난번 깨달은 것과 지금 깨달은 것은 달라.” 그래서 “돈오점수”인 것이다. USB를 만들고 생각해 보니, 워드며 한글이며 기타 여러 프로그램을 깔아야 하는데, 그래도 싹 밀고 새로 까는 것 보다는 업그레이드하는 게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라이센스 번호도 어딘가에 적어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다시 USB는 제쳐두고, 포맷하고, 윈도우 7 다시 깔고, 그 다음에는 윈도우 10 업그레이드를 시작했다. 한참 동안 다운로드를 하더니, 다시 공포의 업그레이드를 확인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800년이 지나서 또 이런 문제가 생길줄은 보조국사 지눌도 미처 몰랐을 것이다.

1993년 입적한 우리 시대의 스님으로 해인사 조실이었던 성철이 “선문정로”라는 책에서 지눌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시작된 논란입니다. 성철의 주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돈오는 견성이며 구경각이요 성불일 뿐, 닦음이 더 필요한 깨침은 아니다.” (위의 책, 153쪽)

내가 위에서 한 말이다. 그래서, 성철은 돈오돈수여야한다고 한다. 그런데, 내가 위에서 한 말처럼 “돈수”는 형용모순이다. 윈도우 10 업그레이드도 한 방에 안되는데, 어떻게 한 방에 수행을 끝내고 세계를 구한단 말인가? 원래 주인공은 무진장 깨진 다음에 맨 마지막에 필살기로 세계를 구해야 하는 법이다. 시련을 극복하지 않고 하얀 간달프가 되는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와이프는 모른다. 1초만에 끝내는 수행은 수행이 아니다.

지눌이 돈오점수라고 말하지 않고, 점수돈오라고 말했으면 성철이 딴지를 걸지 않았을까? 깨달음은 수행 뒤에 오는 것이 상식적이잖아. 한참을 기다리니, 드디어 업데이트 확인이 끝나고 (물론 중요한 업데이트를 “반드시” 별도로 해야만 한다) 본격적인 업그레이드에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깨닫고 나면, 그 다음엔 뭘하지? 윈도우 10 업그레이드가 끝나고 나면 나는 뭘하지? 이틀간의 사투가 끝날 시간이 되자 갑자기 공허해졌다. 나는 어차피 윈도우 사용자가 아니다. 맥 버전 7대부터 맥을 사용했던 사람인데, 내가 이 컴퓨터로 뭔가 다시 할 일은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즈음, 나는 어느덧 이규보, 안향, 우탁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윈도우 10 업그레이드가 끝나도 이 책을 계속 읽을 것인가? 나쁜 책이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그렇지만, 업그레이드가 끝나고 나면, 한국철학사를 읽는 것보다는 흥미로운 일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희망은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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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도우 업그레이드와 돈오점수 - March 24, 2016 - Hyun Kim